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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적 자연 보존 '보헤미아'의 진주

동화같은 마을 -- 체스키 크루믈로브(CESKY KRUMLOV)

2008년 06월 22일 [경북제일신문]

 

ⓒ 백제신문

체스키 크루믈로브는 프라하에서 180Km 떨어져 있고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 14,756명이다. 보헤미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체스키 크루믈로브는 태고적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보헤미아의 진주라 불리고 있다.

역사적인 중심가가 잘 보존되어있어 마치 과거로 돌아가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으로 지정 되었으며, 이곳 성은 세계 300대 건축물에 포함 되어있다.

ⓒ 백제신문

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이 곳 성은, S모양으로 흐르는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자동차가 없는 아주 작은 도심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식 건물들이 늘어선 좁은 거리로 이루어져 매우 인상적이다.

마을사람 중 반 이상이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을 입고, 거리공연, 모의 결투, 인간체스 등을 하며 여름 성수기를 맞이한다. 보헤미아에서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이 곳 성은 5개의 뜰이 있고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성에는 또한 많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극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로크 극장이 있으며 공원에는 움직이는 무대가 있는 극장이 있다. 그리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많은 미술품 전시관에 놀랄 것이다. 아르노보 화가‘에곤 쉴레'의 오리지날 작품이 영구히 전시되어 있는 것에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작품은 이곳의 르네상스 건물로 된 양조장이었던 국제문화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행사인 국제 극과 음악 축제와 역사적 축제가 이곳 도시를 알리고 있다. 이런 광범위한 문화와 관광의 가능성 때문에 체스키 크루믈로브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상업적인 기능도 충족시켜주고 있다.


 

↑↑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필자

ⓒ 백제신문

 

그리고 체스키 크루믈로브를 포함한 주변 지역은 중부유럽에서 가장 넓은 곳 중 하나이며, 부정적인 면으론 아직까지 문명의 손의 거의 닿지 않은 곳이다. 주변 노보흐라드스케 (Novohradske) 산맥과 수마바(Sumava) 산맥은 “유럽의 녹색 지붕”으로 자연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곳 자연의 매력은 많은 일반인들과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또한 체스키 크루믈로브 지역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 하는 지역으로 모든 계절이 관광객들에겐 파라다이스다.

그리고 이곳은 오스트리아, 체코 보헤미아, 독일 바바리아 지역을 연결하는 국경지역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집결지이고 사이클하는 사람들의 국제적인 통로다. 많은 사람들이 블타바강과 리프노(Lipno) 호수에서 수상 스포츠를 즐긴다.

블타바 강이 흐르는 높은 바위절벽 위에는 성과 교회가 새워지기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 왔다. 성이 있는 곳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만들어진 고딕 성은 1250년 전에 이곳 영주들이었다. 영주들은 힘있는 비티고넨Witigonen(Vitkovci)가문을 대표하였다. 그들의 문장엔 5개의 장미가 새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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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신문

302년 크루믈로브 영주의 대를 이을 사람이 없자 그들 친척들인 로젠베르그 가문이 이곳은 차지하게 되었다. 로젠베르그 가문은 1602년 까지 이곳을 차지 했다. 로젠베르그 가문이 3세기에 걸쳐서 이곳을 통치하는 동안 마을과 성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6세기 후반 들어서 성은 강하고 화려한 르네상스 거주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당시 로젠베르그 가문의 통치자들은 보헤미아 왕들 중 교양있는 인문주의자이면서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 나갔고 이며 뛰어난 정치가로서 보헤미아 왕국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차지 하고 있었다.

1602년 합스브륵의 황제 루돌프 2세는 크루믈로브 지역을 사 들렸다. 후에 합스브륵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오스트리아 고귀함을 대표하는 에겐베르그 가문의 요한 울리히 에게 이곳을 선물했다. 1680년대에 이르러 에겐베르그(Eggenberg)가문의 요한크리스티안 1세는 농경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 백제신문

그는 30년 전쟁으로 인해 경제와 예술이 발전 없이 뒤쳐진 것을 만회하려고 이곳을 아주 인상적인 바로크 성으로 만들었다.

1719년 대를 이을 사람이 없이 에겐베르그가 죽자 새로운 왕조인 슈바르첸베르그 가문의 고귀한 후손들이 이곳을 물려받았다. 슈바르첸베르그 가문의 두 번째 대를 이은 요셉 아담은 그의 창조적인 개성을 발휘 했다.

숙련되고 야심 찬 사업가이면서 열정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요셉 아담은 성을 아주 광범위하게 개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실이 있는 비엔나에 대한 문화적인 성향은 건물을 혁신적으로 변화 시키는데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에서의 문화적인 생활의 중요성을 유럽인들에게 자극시켰다.

8세기 후반과 특히 19세기에 경제 예술의 정체성은 오래 지속되었다. 이 때문에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크루믈로브 성은 슈바르첸베르그 가문 자손들이 주요 거주지로서의 역할을 상실 했다. 20세기가 되어서도 지속적인 거주를 하지 못했다.

1947년 체스키 크루믈로브를 비롯한 Schwarzenberg 가문의 재산들은 체코 지방 재산에 귀속되었다. 그리고 지방제가 철폐된 1950년엔 이곳이 체코슬로바키아 국가 재산이 되었다.


성 탑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청광장을 빠져 나와 탑이 보이는 쪽으로 가면 경사진 바위 언덕 위에 솟아 있는, 체스키 크루믈로브의 상징인 성탑이 나타난다.

좁은 골목의 계단을 올라가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탑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계단을 오르면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둥근 7층 구조물이며 아치형 기둥 위에 처마 모양으로 된 부분이 위 쪽과 아래 쪽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탑의 전면엔 채색된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종루는 5층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그곳에 4개의 종이 보인다. 6층은 관광객이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장소로 르네상스 스타일 기둥이 받치고 있는 복도가 있다. 이곳에서 체스키 크루믈로브의 곳곳을 볼 수 있다.

7층은 시계가 있는 방이며 이곳의 작은 유리창으로 불을 비춘다. 처음엔 고딕과 르네상스를 혼합한 형태로 만들었다. 그 증거로 탑의 외형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탑과 작은 성은 13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부분이며 가장 오래된 부분은 1층과 2층이다. 3층은 14세기에 만들었다. 반면에 4층은 르네상스 종루다. 16세기에 성을 평범한 고딕에서 르네상스 스타일로 만들면서 1581년 탑의 윗부분도 르네상스를 첨가했다.

 

ⓒ 백제신문

 



1590년엔 벽면에 얼굴조각을 붙였고 색칠을 했다. 1947년에 야심적인 재건축이 이루어 졌고 1994-96년엔 벽면에 붙인 조각과 색칠을 다시 했다.


망토다리
버스주차장에서 구시가지로 갈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으로 이곳을 통과해야 아름다운 도시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다니는 다리 아래 쪽 길은 처음에 해자였으며 다리는 서쪽 城을 연결하는 부분이다. 이 다리의 이름은 서쪽 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요새화 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3층으로 된 아치모양의 다리는 무거운 돌기둥이 버티고 있다. 낮은 통로는 극장 무도회 홀과 연결되어 있으며 가장 위쪽 통로는 성 정원이 있는 겔러리로 통한다.연결된 복도를 통과하기 위해서 성의 지붕을 가로질러서 작은 수도원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원으로 가는 통로가 폐쇄되었다.

다리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5세기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다리는 나무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합스브륵의 루돌프2세 황제 때는 이 다리를 들어올릴 수 있는 도개교(跳開橋)로 불렀다.

이 지역의 새로운 주인이 된 통치자 에겐버르그(Johan Christian I. von Eggenberg)는 1686년 윗쪽에 있는 정원과 연결 할 새로운 나무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덮은 부분의 첫 번째 나무다리는 1706년에 절반만이 만들어 졌다. 그 입구는 건물 2층 겔러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극장과 다리는 계단으로 연결되었다. 1707-1708년엔 낮은 복도를 만들었다. 이 복도는 무도회 홀과 극장의 로얄 박스와 연결되어 있다.1741년 프랑스가 침공 했을 때 망토다리 위쪽 긴 복도가 내려 앉았다. 그리고 1748-1749에 더 높게 다시 만들었다.

1764년 장기간에 걸친 다리 재공사 계획을 새웠다. 동쪽과 서쪽성의 마당을 연결하는 주요 부분은 돌로 만들었으며 낮은 복도도 새로 만들었다. 1777년 다리가 완전히 완공되면서 지금까지 남아있다

ⓒ 백제신문



체스키 크루믈로브 여행팁

체코 프라하 중앙역(Hlavni Nadra)에서 체스케 부데요비체(Ceskn Budejovice)까지 간 후 체스키 크루믈로브 가는 열차 갈아타야 한다(체코 프라하에서 3시간 30분 소요.)

체스케 부데요비체역에서 체스키 크루믈로브행 두칸짜리 미니열차를 다는 순간 보헤미아 여행은 시작된다. 체스키 크루믈로브 가는 1시간동안 지나치는 간이역 또한 우리 정서에 꼭 들어 맞는다.

체스키 크루믈로브 역에서 구 시가지까지 걸어서 15~20분 소요.(기차시간에 맞춰 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을 버스를 타고 구시가 입구인 부데요비츠카 문까지 가도된다(버스비 5코론)

기차역에서 나와 트리다 미루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블타바 강과 아름다운 구시기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에 다다른다.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시가지 들어가는 부데요비츠카문과 연결되는데 마을 버스를 이용하면 바로 부데요비츠카 문 앞에서 내려준다.

마을 중앙언덕에 있는 체스키 크루믈로브 성은 마을의 상징이자 최고의 볼거리이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전경은 아름답다고 말로써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말...첫 사랑한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과 같이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곳에서 래프팅하고 야간에는 주민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며 이들의 문화를 만끽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곳에는 아직까지 때가 묻지 않았다고 할까. 유스호스텔 2인실이 500코론으로 우리나라 환율로 2만원 정도이다. 모든 물가가 저렴하여 여행자의 안식처로 사랑받기 안성마춤이다.

경북제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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